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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엑스플라난스. 누군가 내 소개를 최대한 거창하게 하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거창해 보이지만 뜻은 단순하다. 설명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내가 만든 단어라면 좋았겠으나 찾아보니 이전에 사람들이 몇 차례 사용한 단어이다.

호모 엑스플라난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 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두 포괄적으로 말해주는 단어다. 그리고 누군가 나에게 왜 대학원에 왔는지, 왜 박사 과정을 선택했는지 물어본다면 나는 호모 엑스플라난스니까, 라고 답할 것이다. 좀 더 풀어서 말하자면 나는 설명하는 게 좋아서, 그리고 더 잘 설명하기 위해 박사 과정에 진학했다.

그렇다. 나는 설명하길 좋아하는 사람이다. 설명이란 무엇일까?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어떤 일이나 대상의 내용을 상대편이 잘 알 수 있도록 밝혀 말함이라 한다. 구글에 검색하니 AI 개요는 이렇게 말한다. 설명은 어떤 사실, 정보, 지식, 원리 등의 실체와 내용을 상대방이 알기 쉽도록 풀어서 이해시키는 진술 방식이나 행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AI가 풀어쓴 설명이 좀 더 마음에 와닿는다.

설명은,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이해, 스토리텔링, 그리고 관계. 설명을 위해서는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며 이해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은 설명을 잘 하지도, 즐기지도 못한다. 스토리텔링은 설명을 설명답게 만드는 핵심 요소로서, 스토리텔링에 실패한 설명은 사실의 나열일 뿐 설명이 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설명은 관계에 기반한다. 앞 문단의 설명에 대한 정의를 보면 두 정의 모두 상대방이라는 개념을 정의에 담고 있다. 즉, 설명은 상대방을 위한 행위이며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이는, 혹은 관계 없이는 좋은 설명이 될 수 없다. 관계 없는 설명은 공허한 혼잣말로 추락하고 만다.

나는 어릴 때부터 사물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을 좋아했다. 왜와 어떻게라는 질문이 입을 떠나지 않았던 것 같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질소 고정을 포함한 질소 순환 과정을 배웠을 때 느꼈던 충격이었다. 단백질의 구성요소인 질소가 대부분 대기 중에 녹아있지만 그 형태로는 도저히 사용할 수 없다니! 그런데 뜬금없이 번개와 콩의 뿌리에 사는 세균이 이 문제를 해결해 준다니!

연구도 마찬가지로 원리를 발견하고 또 이해하는 것이다. 모든 연구가 그렇지는 않다. 어떤 연구는 이것 저것 새로 시도한다. 어떤 연구는 앞선 연구들이 사실 어떤 원리로 설명 가능한지 제시한다. 후자가 보통 더 의미 있는 연구이다. 단순한 성능 개선을 넘어서 왜 성능이 좋은지 하나의 원리로 설명하며, 그 원리를 다른 곳에도 확장하여 적용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몸 담고 있는 전산학은 특별한 학문이다. 어떠한 과학적 원리가 존재하는 세계이지만, 그 물리적 실체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계는 우리의 생각을 토대로 구성되었으며 좀 과감하게 표현하자면 우리의 생각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세계이다. 그렇기에 물리나 화학 분야와 다르게 물리 법칙에 의한 원리보다는 전산학이 토대를 두고 있는 개념적인 원리가 적용되는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내가 전산학에 발을 들인 계기가 바로 내 생각을 그대로 실현할 수 있는 분야라는 점이었다. 학부 교양 수업에서 HTML로 웹페이지 만들기 실습을 하고 있었는데, 내 의도를 담은 텍스트로 된 코드가 내 눈 앞에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거의 하지 않는 편인데, HTML 프로그래밍에 대한 비하 밈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개연성 있는 서사를 좋아한다. 나는 영화를 좋아하는 편인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개연성이다. 영화에서 발생하는 사건 자체는 뜬금없어도 괜찮다. 하지만 인물들의 반응이나 선택이 와닿지 않으면 몰입도가 확 깨지게 된다. 대신 이 인물이 왜 이렇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지 공들여 묘사하고 미리 관객을 설득해두었다면 엄청난 만족을 얻는다. 반전도 마찬가지이다. 반전은 마지막에 가서 아무 말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맥락 없는 반전은 사람을 화나게 한다. 하지만 공들여 만든 반전은 아! 그래서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혹은 아! 이러면 모든 것이 설명되는 구나!를 외치게 한다. 내가 경험한 바, 대학원에서의 발표도 마찬가지이며, 논문도 마찬가지이다. 형태만 다를 뿐 결국은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고, 따라서 마지막에, 혹은 매 순간마다 독자/청중이 느껴야 하는 바도 동일하다. 아! 그래서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혹은 아! 이러면 모든 것이 설명되는 구나!

또한 나는 사람 대 사람으로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것에서 큰 즐거움을 느낀다. 대학원에 오면 사람 대 사람의 설명을 실컷 할 수 있는 기회가 간혹 있는데, 바로 포스터 발표 세션이다. 포스터 발표 세션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발표자들이 각자 자신의 연구를 소개하는 포스터 앞에 서서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연구를 설명하는 시간이다. 매우 시끄럽고, 매우 덥고, 매우 혼잡하다는 점에서 학계의 도때기 시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보통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 진행되는데, 끝에 가면 목은 다 쉬고, 등에는 땀이 흥건하고, 다리는 후들거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포스터 발표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내 연구가 궁금해서 찾아와주는 사람들이 있으며, 흥미로 반짝 거리는 눈빛과 만족감에 끄덕이는 고개를 보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포스터 발표의 핵심은 상대 맞춤형 설명이다. 상대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파악해야 하며 수시로 표정이나 반응을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상대방은 모든 것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 디테일을 다 설명하기보다는 개념 수준에서만 내 연구의 핵심 교훈을 전달하는 것이 서로 이득이다. 반면 내 연구와 밀접한 분야의 사람이면 모든 디테일이 궁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상대방의 수요를 고려하지 않으면 수요 없는 공급이 발생한다. 즉, 상대의 표정과 눈높이를 읽는 배려가 빠진 공급은 ‘설명충’을 만들고, 상대의 이해를 돕고자 하는 배려가 담긴 설명은 ‘호모 엑스플라난스’를 만든다.

비단 포스터 발표가 아니라도 대학원에서는 다양한 관계의 사람들에게 설명할 기회가 끝없이 주어진다. 나의 경우 매주 지도 교수님에게 내 연구 상황을 설명해야 하고, 약 두달에 한번씩 연구실 동료들에게 내 연구 현황을 공유해야 하며, 방학마다 계절학교나 과제 워크숍등을 통해 같은 분야의 다른 학생들과 교수님들께 내 연구를 소개할 기회가 주어진다. 이렇게 다양한 관계 안에서 다양한 깊이로 상대방을 배려하며 도움을 주기 위한 설명을 준비하는 것은 굉장한 훈련이 된다.

그렇다. 내가 대학원에 진학한 이유는 이곳이 설명하는 능력을 갈고닦는 곳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박사라는 타이틀에는 그리 큰 욕심이 없었던 것 같다. 학위가 목표였던 적도 없었다. 단지 이 과정을 통해서 얻어갈 것들에 욕심이 생겼다. 누군가는 대학원의 핵심이 문제 해결 능력이라 하지만, 나는 그보다 본질적인 것은 설명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문제야 어떻게든 해결하면 되지만 잘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먼저 원리를 이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다른 사람이 밝혀낸 원리부터, 내가 처음 찾아내는 원리까지. 또한 어떠한 사실이 말이 되게끔 스토리를 구성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발표이며 논문이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관계 위에 다양한 수준으로 설명을 풀어나가야 한다. 지도 교수에게, 연구실 동료에게, 면식이 있는 같은 분야 교수님께, 또는 초면인 학술대회 참가자에게 등등.

그러니까 대학원은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다. 설명을 듣고 또 직접 설명하는 걸 너무 좋아해서 모인 사람들이, 기존에 존재하는 설명을 다 들어버린 후 급기야 새로 설명할 거리(연구)를 만들어서까지 설명하는 곳.

그래서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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